초기 스톤즈 이모저모
토니 스카두도 전기 번역
키스 최애인데..... 다른 애들 글만 많이 올리는듯
이거 쓰고 진짜로 키스 글만 왕창 올리겠음
1. 브라이언이 살았던 첼트넘은 런던에서 거의 100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매우 고상하고 세련된 마을이다.
브라이언이 그곳에서 태어났을 때쯤, 첼트넘은 약간 지저분해졌지만, 그곳에는 여전히 귀족적인 마을이 되고자 하는 열망이 가득했고, 그 열망은 시민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브라이언의 아버지는 피아노와 오르간을 연주한 항공 엔지니어였으며 그의 어머니는 피아노 선생님이었다.
브라이언은 음악이 지배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랐고 10살이 되기 전에 피아노에 능숙해졌다.
그는 교회 음악, 초창기 찬송가를 매우 좋아했고 루이스 존스는 그의 아들이 십대 초반에 음악이 거의 그에게 종교가 되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그는 악기에 대한 환상으로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법을 배웠고, 브라이언이 클래식 곡을 연주할 때 그의 어머니는 옆에서 피아노를 쳐줬다.
(브존 미국 재즈 덕후 됨 찰리 파커 왕 좋아함)
브라이언은 10대 때도 안절부절못하고 쉽게 상처받았으며 매우 내성적이고 편집증적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기억한다.
"브라이언은 평범하고 틀에 박힌 소년이었지만, 동시에 친절하고 호감가는 사람이었다.
그는 품행이 단정하여 호감을 받았다. 10대 초반에 특이한 변화가 찾아왔는데, 그는 권위에 대해 약간의 원한을 품기 시작했다. 브라이언은 미약한 반항을 시작했고 그것은 나이가 들면서 강해졌다. 그는 학부모와 학교의 권위에 반항했다."
그의 부모는 브라이언이 재즈를 광적으로 좋아하게 되면서 항상 꽤 괜찮았던 그의 학교 성적이 악화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크게 걱정했다.
"우리는 평범한 부모였다. 당시에 브라이언의 앞날엔 안정적인 직업을 구할 수 있는 길로 가득 차 있었는데, 그가 재즈에 대한 애정에 푹 빠졌을 때 나는 실망하고 불안감에 가득 차 있었다. 내가 하라고 한 것, 내가 말 한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는 음악으로 떠났다."
당시 존스 부부는 그것을 알아볼 수 없었지만 브라이언은 모든 좌절, 모든 편집증, 모든 상처와 분노가 그의 내면에 스며들기 시작할 때까지 그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고 유일한 배출구는 그의 음악뿐이었다.
브라이언에게 음악은 단순히 계급 체계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아니었고 명성과 부를 얻는 길이었다.
음악은 영혼을 먹는 독에서 탈출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의 부모가 겉으로는 반항이라고 본 것은 그를 서서히 파멸시킬 더 깊은 고통의 표출이었다.
브라이언이 첼트넘 문법 학교에 다니고 있었을 때, 그는 웨스트 컨트리의 작은 클럽에서 주말에 연주하는 재즈 밴드에 가입하여 하룻밤에 몇 실링을 벌었다. 그러나 몇 달도 되지 않아 브라이언은 트레이드 재즈의 단조로움에 싫증이 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건축가 사무실의 일을 맡았을 때, 음악의 일상과 사무직의 일상으로 인해 자신의 삶이 거의 막다른 길에 이르렀음을 느꼈다.
게다가 임신을 시킨 열다섯 살짜리 여자아이가 출산을 앞두고 있었고, 브라이언은 세 갈래로 난관에 봉착했다. 밴드는 불만족스러웠고, 일도 불만족스러웠고, 아버지로서의 책임은 무서웠다.
그래서 그는 색소폰, 기타를 챙기고, 대륙으로 도망쳤다. 히치하이크를 하며 몇 달 동안 스칸디나비아를 돌아다니다가 블루스에 푹 빠져 기타에 능숙해진 뒤 자금이 바닥나자 첼트넘으로 돌아왔다.
귀찮다 음슴체로 요약해서 쓸게요
60년대 봄에 알렉시스 코너 만남 브라이언은 런던으로 올라가 블루스 뮤지션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하게 느꼈다고 함
알렉시스, 시릴과 함께 주말마다 런던으로 여행 가고 그랬음 글구 블루스 음악가들 사이의 그룹 주요 멤버가 됨
이 뒤 일링클럽에서 브존이 연주한 걸 키스믹이 보고... 기타등등
2. 처음 일링에서 노래를 부르기 위해 무대에 올랐을 때 이른 공포와 초조감 이후, 믹은 관객들이 긴장을 풀고 믹의 공연을 즐기기 시작했기 때문에 공연에 대해 엄청나게 흥분했다.
그는 일요일 아침 일찍 키스와 함께 다트포드로 돌아가 그가 느낀 것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내가 항상 기억하는 건 알렉시스가 노래 부르라고 나한테 부탁한다는 거야. 나는 그저 거기 서서 기다리고, 다른 녀석들이 뽐내는 동안 조급해지는 마음이 들지. 왜냐면 난 이 세상 다른 어떤 누구보다도 마이크 앞에 서고 싶거든. 그냥 노래만 부르면 돼.”
3. 키스는 늘 믹과 같이 다니고 앞 테이블에서 노래 하는 믹을 지켜보았지만 그는 락커였기때문에 같이 무대에 서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다. (당시엔 락앤롤을 취좆하는 분위기가 깔려있었다고 함)
알렉시스의 아내 바비는 키스가 상처 받았을까봐 걱정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밤 마퀴에서 키스와 함께 앉아 있을 때 그녀는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너랑 너네 밴드 (키스믹은 다트포드역에서 재회 하고 딕 테일러와 함께 little boy blue and the blue boys 밴드를 했었음)는 어떠니? 지금 믹이 알렉시스랑 함께 일하고 있잖아."
"문제 되지 않아요. 믹은 아주 훌륭해요." 키스가 말했다. "오랫동안 그는 우리가 (거기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을 들어왔어요. 우리는 정말로 믹을 믿어요. 그는 성공할거예요."
바비는 한참 동안 키스를 응시했다. 그녀는 그가 재거의 재능을 진심으로 깊이 느끼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지 못했다. — 아무도 모르게—키스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소년들은 새로운 밴드인 롤링 스톤즈를 결성하여 가능한 한 자주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밴드에 대해 매우 비밀스러웠고 알렉시스나 다른 누군가에게 그들이 새로운 그룹을 만들었음을 결코 알리지 않았다.
재거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계획과 야망을 혼자 간직하고 있었다. 그는 또 자신과 알렉시스의 나이 차이를 매우 의식했다. 그는 종종 바비 코너를 "바비 이모"라고 부르곤 했는데, 그녀는 아직 서른 살도 안 되었고, 그보다 열 살이 조금 더 많았다. 존 메이올의 아내 파멜라는 바비랑 나이가 비슷했지만, 재거는 그녀를 "올드 마더 메이올"이라고 부르곤 했다.
믹은 자신의 나이가 아니면 누구와도 매우 경계하고 거리감을 가졌으며, 그들 중 몇몇은 믹이 기성세대를 희미하게 이기고 싶어한다는 인상을 남겼다. 믹은 자기 또래의 음악가들만이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느꼈다.
4. 재거와 키스가 브라이언의 공연에 깊은 인상을 받은 후 몇 주 만에 함께 하게 되었다.
그 첫 만남 직후에 키스와 브라이언은 함께 연주하기 시작했다. 서로 리프를 튕기고 기타를 튜닝하면서 좋아하는 예술가들에 대해 얘기 했다. 당시 브라이언은 비록 트레이드 재즈 음악이 싫었지만, 돈을 벌기 위해, 그리고 밖으로 나와 공연을 할 기회를 얻기 위해 재즈 밴드와 일주일에 몇 번 밤에 연주하고 있었다.
브라이언은 키스를 여러 번 데리고 와서 그의 그룹과 함께 앉아서 연주하게 했다. 다시 한번 키스의 락 사운드는 나머지 밴드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는 연주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브라이언은 자신들만의 그룹을 형성하는 것이 훨씬 현명할 것이라고 결정했다.
롤링 스톤즈는 그들만의 음악을 연주할 필요성 때문에 만들어졌다.
5. 초기 멤버: 브라이언 존스, 키스 리처즈, 믹 재거, 딕 테일러(베이스), 토니 채프먼(드러머ㅡ 원래는 찰리 데려오고 싶었는데 코너의 드러머여서 얘로 골랐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