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스톤즈 관련 글 17
    브라이언 존스 시기 2020. 9. 26. 08:16

     

     

     

     

     

    스톤즈 전기 번역

     

    브존 분량이 적죠 브존글 나중에 추가 많이 할 거예요

    일단... 서사 정리 글부터 끝내고..ㅜㅜ 빨리 끝내고 싶3...   

     

    1. [ 저널리스트 닉 켄트에 따르면 존스는 스피드볼과 코카인, 몇 개의 애시드, 그리고 몇 개의 진정제나 최면제로 하루를 시작했다. 사진작가 에단 러셀은 "1968년 그를 찍었을 때 그는 끔찍해 보였다"라고 말했다. "그를 근접 촬영하면 그는 스물여섯 살이지만 마흔여덟처럼 보인다. 아마 내가 할 일이 있어서 그랬는지 그때 그걸 보지 못 했는데, 그는 위층으로 올라가서 미국 국기 셔츠를 입고 총을 흔들며 내려왔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정말 멋지다!'는 것뿐이었다. 그는 여전히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머리만 보였다."

     

     

    그때 찍은 사진들

     

    그것은 브라이언의 내면에 가득했다. ㅡ 분노와 공포, 그것들의 울분!ㅡ 그것들은 그를 신뢰할 수 없고, 역기능적이고, 고약하게 만들었다. 

     

    "처음엔 그들이 내 음악을 빼앗고, 그다음에는 내 밴드를 빼앗고, 지금은 내 사랑을 빼앗았어." 존스가 1967년에 그의 친구 데이브 톰슨에게 말했다.   

     

    음악: 브존은 블루스 밴드로 스톤즈를 시작 했음. 브존은 이게 쇼 비즈니스가 될 걸로 예상 못 했다고 나중에 믹이 말 함.  물론 척 베리 스타일로 연주해서 취좆 받던 키스를 밴드에 받아줄 만큼 락앤롤에 거부감 크게 가진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블루스>>>나머지였댔음  

     

    밴드: 스톤즈 창립하고 쇼 예약하고 인터뷰하고 노래 뭐 할지 정하고 이런 거 브존이었고 초기엔 인기도 젤 많았댔음. 

    근데 스톤즈가 마니아로 가득 찬 클럽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 지역을 순회하면서, 군중들은 점점 믹을 더 원하기 시작했고 브존은 분개했다고 함. 믹이 받은 팬레터 찢어버린 적도 있음.  나중에 키스믹이 곡 쓰기 시작하고  재거ㅡ리처즈 작곡 콤비가 빵 뜨게 되면서 .....더보기

     

    사랑: 브존은 바람둥이였어서 사생아가 5명있는데 (6명일 가능성도 높다고 함. 이중 두명을 줄리안이라고 이름 똑같이 지음) 한 두 달 정도 버틸지 모르지만 항상 마지막에 브존은 책임 안 지고 떠났댔음.   마침내 아니타가 여자에 대한 탐구의 결론에 도달했댔음. (탐구..?) 브존은 아니타를 엄청 사랑했는데 키스가 뺐었고..글타네염 

     

     

    60년대 말이 되자 존스는 정신을 잃기 시작했다. LSD는 그의 자아를 파괴하고 신경을 분리시켰다. 아니타는 그가 첫 번째 애시드 환각 체험에서 정말로 회복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편집증 환자였다. 그 시대를 특징짓는 마약단속과 경찰의 정밀조사로 그는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그는 친구들이 자기 얘기를 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자신이 조롱당하고 있다는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

     

     

    (아무튼..브존이 자주 세션에 불참하고 마약 기소 문제로 투어 활동하는데 차질이 생기자 스톤즈는 브존을 해고하기로 함

     

     

    2. [60년대의 마지막 여름이 시작되면서, 롤링스톤즈가 현재 브라이언 존스의 후임자를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는 것은 런던의 락 엘리트들 사이에서 상식이었다. 브라이언의 리드 기타리스트 역할을 누가 맡을 것인지는 까다로운 문제였다. 전성기에 가졌던 위험함과 장난의 스릴을 발산한 선수는 말할 것도 없고 절반의 영특한 선수를 찾는 것도 충분히 어려울 것이다.

     

    이 문제는 믹의 내연녀 마샤 헌트가 명성을 얻기 전에 잠시 함께 살았던 하드코어 블루스 밴드 리더인 존 메이올에 의해 해결되었다.  그녀는 메이올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의 밴드 블루스 브레이커스에는 현재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믹 테일러라는 스무 살의 기타 거장이 등장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샤는 이 소식을 믹에게 전달했고, 믹은 즉시 테일러를 오디션에 불러들였다.  쌀쌀맞아 보이는 아기 같은 얼굴에 소녀처럼 숱이 많은 머리칼을 가진 이 스무 살 청년은 스톤즈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는 전혀 닮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재능은 부인할 수 없었고, 더 중요한 것은 키스와 즉각적으로 음악적 친분을 맺는 순간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Live with Me” 와 “Country Honk,” 두 곡의 렛 잇 블리드 트랙에 리프를 기여한 후 그는 믹으로부터 일주일에 150파운드의 임금을 받고 합류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

     

     

    3. [그래서, 5월 말에, 브라이언에게 공식적으로 해고할 순간이 왔다. 그가 더 이상 런던을 방문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행위는 이스트 서식스의 헤어필드 근처에 있는 그의 새 시골집인 코치포드 농장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여기. 곰돌이 푸는 무시하세요.

     

    코치포드는 원래 아니타 팔렌버그와 닮은 수키 푸아티에와 공유되는 사랑의 보금자리가 될 예정이었으나, 수키는 브라이언의 폭력에 싫증을 느끼고 마침내 그를 떠났다. 

     

    브라이언은 스톤즈 사무실과 계속 교류하고 있었다.  믹은 성격상 숨기기를 선호했지만 브라이언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브라이언이 전화할 때마다" 셜리는 기억한다, "믹은 항상 가장 먼저 '그 사람은 어때?'라고 물었다." 브라이언이 중독 치료를 위해 수도원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믹은 즉시 그에게 꽃이 보내질 수 있도록 주선했다. 재거는 돈에 인색하다고 잘 알려졌지만 브라이언에겐 고액의 퇴직금을 주었다. 셜리는 "믹은 브라이언이 밴드에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 알아봤다"고 말한다. "그는 그 보수가 가능한 한 후해지기를 원했다." ]

     

     

    4. [1969년 6월 8일 믹, 키스, 찰리는 브라이언을 해고하기 위해 코치포드 농장으로 차를 몰았다.

     

    샘 커틀러가 내게 말했다. "브라이언은 핑크 플로이드의 시드 바렛과 같은 사람들 중 한 명이었고, 마약을 과도하게 하는 길이 음악 사업에서 지혜의 궁전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는 몇몇 다른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헤어필드는 차로 레드랜즈에서 겨우 한 시간 거리였고, 비틀즈가 원래 드러머였던 피트 베스트를 버렸을 때 그랬던 것처럼 믹과 키스는 중재자가 필요할 경우에 대비해 찰리 와츠를 데리고 직접 왔다. 그러나 그 만남은 브라이언이 평소 가지고 있던 불신이나 히스테리를 전혀 일으키지 않고 끝났다. 그는 스톤즈 음반으로부터 여전히 브라이언에게 부과되는 로열티 외에 10만 파운드(현대적 가치로는 100만 파운드가 훨씬 넘는 금액)의 일거수일투족을 받게 될 것이라는 데 동의했다. 

     

    리처즈: 그를 해고하는 것은 믹과 나에겐 힘든 일이었지만, 그는 거의 연주를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브라이언은 그의 호흡기 질환으로 바르비투르 (진정제, 최면제로 쓰이는 약물)를 복용하고 있었다. 그가 구석에 앉아 숨을 죽이고 그의 흡입기를 입에 대는 것을 여러 번 봤다. 우리는 그 남자를 투어에 데려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유일한 방법은  "미안하지만, 넌 나가야겠어." 라고 말 하는 것이었다.

     

    재거는 나중에 "우리는 브라이언을 꽤 오랫동안 데리고 다녔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의 장황한 비난을 참았다.  그는 1년이 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가 갑자기 '엿먹어, 넌 쇼에 나오지도 않았잖아. 넌 해고야.' 라고 말 한 것은 아니었다." 

     

    키스에 따르면 브라이언은 마치 그들이 자기 명령을 끝내기를 기다리며 황무지에 있는 것처럼, 마치 그것을 기대한 것처럼 조용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모든 것이 끝나자 브라이언은 악수를 나누며 구태의연한 예의를 갖춰 작별을 빌었다. 그들의 차가 사라졌을 때야 다시 집안으로 뛰어들어 부엌 식탁에 머리를 얹고 눈물을 흘렸다. ]

     

     

    5. [  브라이언이 자신이 만든 밴드를 탈퇴했다는 공식 발표는 1969년 6월 9일에 나왔다. 데일리 스케치에는 “BRIAN JONES QUITS THE STONES AS GROUP CLASH OVER SONGS” 가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브라이언이 스톤즈를 떠난 것은 그 밴드가 더 이상 그에게 흥미를 주는 종류의 음악을 연주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브라이언의 해고가 그만뒀다는 공식 선언으로 바뀐 지 이틀 후, 재거와 마리안느는 저녁 식사를 위해 클랩튼의 집으로 차를 몰고 내려갔다. 그들이 클랩튼의  식당의 거대한 테이블에 앉자 에릭은 다음 주 일요일 하이드 파크에서 열린 블라인드 페이스 콘서트에 재거를 초대했다.

     

    ( 블라인드 페이스의 무료 콘서트는 에릭, 진저 베이커, 스티븐 윈우드 등등 참가하는 슈퍼그룹 콘서트라고 함)

     

    그날 일요일 재거가 마리안느와 몇 명의 친구들과 함께 하이드 파크에 도착했을 때, 그는 군중의 규모에 감명을 받았다. 그들 중 약 15만 명, 그의 삶에서 한 곳에 모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재거가 그의 (무대 위의) 마법을 쓰고 싶어 할 거대한 군중들. 무대 뒤에서, 재거는 콘서트의 책임자를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물었다. 재거는 정부 관리들에게 콘서트를 허락하도록 설득했던 이 단체의 감독인 피터 제너에게 소개되었다. 재거는 제너에게 "스톤즈의 콘서트에 관심 있어?"라고 물었다. 제너는 두 번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스톤즈의 무료 하이드 파크 콘서트는 7월 5일 토요일로 잡혔다.

     

    알렉시스는 브라이언의 소유지로 차를 몰고 내려갔다. 브라이언은 다시 함께 할 밴드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며 진짜 음악을 연주하는 밴드와 함께 다시 길을 가기를 고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브라이언은 클레오 실베스트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클레오 실베스트리는 1962년에 스톤즈를 만났고, 그때 그녀는 학교에 있었고 밴드가 막 결성되고 있었다. 이제 브라이언은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그의 새 밴드를 만든 후에 첫 녹음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지 물었다.

     

    클레오는 웃었다. "왜 너는 내가 너랑 녹음하길 원해? 넌 내가 필요 없어."

     

    브라이언은 그녀에게 웃지 말라고 말했다. "나는 매우 진지해, 클레오." 그가 말했다. "내가 연주하고 싶은 음악으로 넌 나를 도와줄 수 있어."

     

    클레오는 그녀가 도울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내가 리허설을 하러 오길 원할 때 내게 알려줘."

     

    브라이언은 "좋아, 내가 전화할게"라고 말했다.

     

    브라이언은 안나 워린이라는 새 스웨덴 여자 친구를 사겼다. 그녀가 아니타와 닮았다는 것은 모두가 동의했다. 그는 다시 열정적인 상태가 됐다. 그는 아마 알렉시스 코너, 제프 벡 또는 지미 헨드릭스와 함께 새로운 밴드를 시작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비틀즈에 가입하거나 슈퍼그룹을 창립하자는 얘기까지 나왔다. ]

     

     

    6. [ 재거의 하이드 파크 콘서트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2년 만에 처음으로 스톤즈 콘서트가 열렸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흥분하는 것 같았다. 이 콘서트는 브라이언이 없는 첫 콘서트였다.  재거는 브라이언이 콘서트에 (군중으로) 참석해야 한다고 결정했고, 몇몇 직원들에게 브라이언 앞으로 전화를 걸라고 명령했다. 브라이언은 공연 전 주에 콘서트에 참석해 달라는 전화를 여러 통 받았다. 그러나 재거는 브라이언에게 직접 전화를 걸진 않았다. 콘서트가 열리기 전 월요일, 그는 스톤즈 팬클럽의 이사였던 셜리 아놀드와 함께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브라이언과 아직 얘기 안 해봤어?" 재거가 그녀에게 물었다. "그가 콘서트에 올까?"

     

    "그 사람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셜리가 말했다.

     

    "그가 오면 착하게 대해줘, 어쩌면 우리와 함께 연주할지도 모르니까." 재거가 말했다. 

     

    "왜 그에게 전화를 안 해?" 셜리가 제안했다. "너가 직접 그에게 말해줘. 그는 그걸 좋아할 거야."

     

    재거는 잠시 곰곰이 생각했다. "모르겠어. 할 일이 많고, 콘서트 준비도 해야 하고, 호주 투어도 준비하고. 좋아, 내가 브라이언한테 전화해볼게. 하지만 넌 계속 그를 쫓아다녀. 그는 토요일에 와야 해. 알렉시스와 그의 새 밴드가 거기 있을 거야. 브라이언이 밴드를 만들겠지."

     

    브라이언 존스는 3일 후에 죽었다. ] 

     

     

    7. [ 브라이언은 안나 워린, 프랭크 소로굿, 자넷 로슨과 함께 코치포드에 있었다. 브라이언은 술을 많이 마신 상태였다. 그는 자정 무렵 수영장으로 들어갔고 자넷 로슨은 반대했다. "브라이언, 수영장 안으로 들어가지 마. 수영할 상태가 아니잖아."  브라이언은 그녀를 무시하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수영을 잘했기 때문에 빠르게 수영장을 몇 바퀴 돌았다.

     

    프랭크 소로굿은 브라이언을 보기 위해 라운지 의자에 느긋하게 앉아 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 브라이언이 수영을 잘하고 보드 위에서 다이빙을 잘 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지자, 프랭크는 담배를 한 대 피우기 위해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단지 몇 분만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그가 돌아왔을 때 브라이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프랭크는 재빨리 수영장 가장자리로 걸어갔다. 브라이언은 물 안에 있었다.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프랭크가 도와달라고 외치자 안나는 집 밖으로 달려 나왔다. 그녀는 뛰어들어 브라이언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그들은 수영장에서 그의 몸을 빼내었고, 안나는 인공 호흡을 하면서 그를 되살리려 했다. 그러나 헛된 짓이었다. 브라이언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사망선고를 받았다.

     

    일주일 후에 심리가 열렸다. 브라이언의 시체를 검시한 검시관은 "약물과 알코올의 영향으로 익사해서 죽었다." 라고 말 했다. 검시관은 "지방의 퇴화와 알코올과 약물의 섭취로 인한 간 기능장애가 심각하다"고 보고했다. 

     

    그의 공식 평결: "사고사" ]

     

     

     

    브라이언의 마지막 사진

     

     

     

    8. 브존 죽음에 대해 자살인 거 아니냐는 말이 많았는데 브라이언과 가까이 지내거나 브존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럴리가 없다고 말 함. 

     

    [알렉시스 코너:  자살하려면 자살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난 솔직히 브라이언이 죽을 계획을 세웠다고는 믿지 않는다. 수영하면서 잠시 망상에 빠져 있다가 갑자기 죽기가 쉬울 거라고 마음먹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이 정말 바보같은 실수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가 고의로 자살을 계획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브라이언이 죽을 생각을 품었다면 그 때가 그가 죽기에 좋은 시기였으리라고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죽기 전에 정말 행복해했기 때문이다. 6개월 전의 그는 우울한 상태였지만 그가 죽었을 시기쯤 그는 막 행복이 시작 되고 있었다.

     

    아니타 팔렌버그 : 그가 그렇게 했을 때 죽은 이유는  과다 복용을 시작하고 동시에 천식 상태에 시달리기 시작하는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는 사람이 주변에 없었기 때문이다. 전에도 여러 번 그런 상태였지만 언제나 그를 돌봐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만약 브라이언이 가장 사랑하고 가장 싫어하는 두 사람(키스아니타)에게 마지막 한 번의 치명타를 주고 싶었다면, 존스는 해고된 지 2주 후, 그리고 스톤즈가 그들 커리어에서 가장 큰 관중들에게 연주하기 이틀 전에 죽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키스는 헤로인으로 브라이언처럼 자신을 파괴하면서 다음 10년을 보낼것이다.  아니타는 브라이언의 죽음으로 인한 고통과 죄책감을 달래기 위한 그녀의 시도로 키스를 따라 더욱 처참한 결과를 가지고 자멸의 길로 가곤 했다.

     

    "키스는 그날 아침 사무실로 들어와 나를 붙잡고 '괜찮아?' 하고 물었다."  셜리 아놀드가 기억 한다. "아무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을 것 같은데, 왜냐하면 그들 모두가 브라이언이 젊을 때 죽을 것이라고 예상했어도, 그런 일이 일어나면 그것은 여전히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하이드 파크에서 계획된 무료 콘서트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믹이 가장 먼저 한 말은 '우리는 그것을 취소해야 해.' 라는 것이었다." 

     

    키스와 찰리는 공연을 계속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 했다. 추모 콘서트로 만들어서 브라이언에 대한 헌사를 표하자는 것이었다. 찰리가 소리쳤다. "브라이언을 위해 하자! 브라이언을 위해 연주하자." "그래, 맞아." 재거가 말했다. "브라이언을 기억하며." 나중에 기자가 브라이언이 묻히기도 전에 스톤즈가 그렇게 큰 콘서트를 개최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말했을 때, 키스는 주먹으로 그의 코를 때렸다. ]

     

     

    9. [ 스톤즈의 정리해고 기간과 그 동안 락 취향, 프레젠테이션의 변화로 미루어 볼 때, 하이드 파크에서 그들을 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올지 알 수 없었다. 브라이언의 많은 충성스러운 팬들은 믹 테일러로 대신한 그들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할 수도 있고, 무료임에도 불구하고 수천 명의 팬들이 이 행사를 거부할 수도 있다. 믹조차도 자신이 어떻게 넘어갈지 불안해했고, 지난 달 블라인드 페이스의 15만 명 근처에 군중이 몰려들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믹은 7월 5일 토요일까지 48시간 동안 키스와 함께 14곡의 연주목록을 편찬하고 가장 먼저 무대에 오를 밴드의 리허설을 했다. 토요일 새벽이 되자 25만 명 가량의 사람들이 하이드 파크에 모여 스톤즈의 복귀를 환영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총 50만명이 왔다고 함) 

     

    (경범죄로 12명 체포, 칼 한줌 압수, 400명이 열사병으로 치료 받음)

     

    마리안느와 니콜라스는 믹과 함께 런던데리에 있는 스톤즈의 베이스캠프로 차를 몰았다가 무대 오른쪽 앞좌석으로 안내되었다. 마리안느의 머리카락은 여전히 오필리아 역을 위해 짧게 깎여져 있었다. 그녀의 말로는, 그녀는 "죽은 것처럼 보였다." "약간 아프고, 어디 맞은 것처럼 보이고, 거식증, 창백하고, 병들어 얼룩투성이가 되었다." (믹재거 내연녀인 마샤 헌트도 와 있었음) 

     

     

     

      공연하다가 믹이 낭송한 추모시 아도니스 

     

     

     

     

     

    Peace, peace! he is not dead, he doth not sleep—

    He hath awakened from the dream of life—    ’

    Tis we, who lost in stormy visions, keep   With phantoms an unprofitable strife,   

     And in mad trance, strike with our spirit’s knife  

    Invulnerable nothings!—We decay  

      Like corpses in a charnel fear and grief  

      Convulse us and consume us day by day, 

       And cold hopes swarm like worms within our living clay . . .

     

    The One remains, the many change and pass ; 

      Heaven’s light forever shines, Earth’s shadows fly    

    Life, like a dome of many-coloured glass,  

      Stains the white radiance of Eternity, 

       Until Death tramples it to fragments.—Die!  

      If thou wouldst be with that which thou dost seek!

    Follow where all is fled!......

     

     

     

     

    맨드레스 예쁘죠..

     

     

     

     

     

     

    키스 정말...락스타네염 

     

     

    (2500마리정도 되는 흰 나비를 풀었는데  방출 하기 전 상자 안에 있던 나비들이 더위땜에 많이..죽었다네염..^^ 

    오프닝 넘버는 "I'm Yours and I'm Heres"로 브존이 특별히 좋아하던 곡)    ]

     

     

     

    10. [브라이언이 죽은 후, 키스는 살아있는 사람이나 죽은 사람 중 한 명이 되기 위해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는 인생에서 거의 붙잡을 것이 없었으며 무언가에 대한 헌신을 해야했다. 브라이언의 죽음과 아니타의 간통(본인은 그렇게 생각했나 봄), 그리고 억압적인 권위자들의 올바른 세계에 환멸을 느낀 키스는 믹에게 주요한 헌신을 하기로 결심했다. 처음에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가장 위대한 음반을 만들고 위대한 성과를 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것을 지옥과 고통에서 탄생한 파트너십, 즉 결혼으로 보았다.]

     

     

    '브라이언 존스 시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앤드류 자서전 부분 번역 (추가)  (0) 2020.12.31
    스톤즈 관련 글 16  (0) 2020.09.21
    스톤즈 관련 글 15  (0) 2020.09.06
    스톤즈 관련 글 14  (0) 2020.09.01
    스톤즈 관련 글 13  (0) 2020.08.28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