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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톤즈의 프랑스 망명기
    믹 테일러 시기 2020. 7. 6. 20:19

     

    1971년 2월 6일, 세금폭탄 문제로 롤링 스톤즈는 프랑스로 망명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함 

    스톤즈 재무 관리자인 루퍼트 뢰벤슈타인은 영국에서 짧은 "작별 투어"를 하자고 말 함

    71년 4월에 프랑스에서 망명 생활 시작 

    키스는 프랑스에서 궁전 중 하나인 넬코트 (19세기에 영국 제독이 지은 로마식 별장) 임대함

    빌라 넬코트 사진..삐까뻔쩍 하네요...^^

                                      

    키스는 같이 어울리기 위한 패거리를 모음

    이상하게도 프랑스로 망명가는 것에 대해 그토록 분개한 후,

    새 생활에 가장 빠르고 만족스럽게 정착한 사람은 바로 키스였다.

    아니타는 이 지역에서 가장 훌륭한 요리사 중 한 명을 고용하여 많은 양의 최고급 지역 와인과 함께 제공되는 호화로운 일일 식사들을 만들어냈다. 자신의 단순한 취향에도 불구하고, 키스는 그의 삶에서 가장 크고, 가장 길고, 가장 호화로운 파티를 여는 데 어떤 비용도 아끼지 않을 참이었다. 

    4월과 11월 사이에 그는 일주일에 7,000달러 – 음식값으로 1,000달러, 술값으로 1,000달러, 마약 값으로 2,500달러, 임대료로 2,500달러를 썼다.  총액은 그의 주당 수입인 2만 5천 달러의 3분의 1에도 못 미쳤다.  (미쳤네) 

     

    키스의 호텔 방이 언제나 투어 중 스톤즈의 집이었듯이, 넬코트는 프랑스에 있는 그들의 본사가 되었다. 

     

    그 여름 동안 한 번에 3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넬코트에 머물렀는데, (음반사 경영자, 그루피, 마약 중독자들, 언론인, 유명 인사들 등등등) 그중에는 그가 함께 일했던 사람들 중 가장 창의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많은 논의 끝에 그들은 키스의 커피 하우스라는 이름의 지하실에서 다음 앨범을 녹음하기로 결정했다.   잦은 정전과 화재가 일어났고 장비는 제대로 작동하지도 않았다.  

     

     

    넬코트를 찾아 온 여러 사람들 .. ^^

     

     

    스톤즈가 손님들을 환대하는 동안, 프로듀서 지미 밀러와 앤디 존스는 밴에서 기다렸다. 키스의 레크레이션이 계속 되면서 그들이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키스는 완곡하게 '난 지금 말론이를  재울거야'라고 말 했다." 존스는 기억하고 있다. "정말 아무도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믹 재거, 지미 밀러와 함께 계단의 맨 아래에 있었던 기억이 나는데, 우리는 키스를 원했다. 나는 믹에게 '밴드 일이니, 가서 데려오지 그래?'라고 말했다. 그는 '나는 그곳에 가지 않을 거야…'라고 말했다.

     

    일단 녹음이 진행되자 밴드 멤버들 각자가 매일 자기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불편해졌고, 그래서 그룹 전체가 넬코트로 이사했다. 이윽고 키스의 별장은 거대한 이디스 그로브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 이디스 그로브에 비하면 천상계임 더러움을 이디스 그로브에 비유하다니 저자가 이디스 그로브를 안 가본 게 틀림 없다)

    레코드, 빈 병, 대마초, 반쯤 그을린 담배, 기타, 옷 등이 바닥과 가구를 어지럽혔다. (겨우 이 정도로 이디스 그로브에 비유하다니.. ) 

     

    겨우 이 정도로 이디스 그로브에 비유 하다니 

     

     

    그의 마약 중독자 친구들 중 일부는 그의 손님으로 몇 달 동안 넬코트에 머물렀지만, 키스는 멤버들 각각에게 일주일에 250파운드를 하숙비로 청구했다. 

    키스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밴드가 며칠 이상 활동하지 못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레코드를 만드는 이상적인 조건은 밴드가 모두 함께 살고 거실에서 녹음하는 것이었다. 

     

    "방종하고 자만심으로 가득 찬 이 계절에 스톤즈는 그들의 음악적 전성기에 도달했다. 믹이 비앙카와 교제하느라 분주한 사이, 키스는 그룹을 총괄하는 것을 이어 맡았다. 그는 여유롭고 치명적인 화음 리프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일련의 패어 다운 클래식을 작곡했는데, 이는 재거가 입을 열기도 전에 노래를 혈류에 빠뜨렸다. 그런 활력 넘치는 에너지는 모든 마약 중에서 가장 살인적인 약물도 경이로운 소리를 내려는 직감을 억누를 수 없는 체력에서 얻어졌다." 

    ㅡPhilip Normanㅡ

    시발  마약 작작해 

     

    1971년 5월 12일 믹비앙카 결혼 

     

    키스 비앙카 안 좋아함.... 비앙카랑...기싸움 함...^^  

     

    비앙카는 파리로 이주하며 넬코트로 돌아오기를 거부했다. 지미 밀러는 오후가 되면 키스의 별장에서 믹이 비앙카를 따라 파리로 날아가 버렸기 때문에 기분이 언짢은 기타리스트를 찾아 헤매곤 했다. 키스는 비앙카가 믹을 붙잡고 있는 것에 대해 복수심으로 자주 비아냥거렸다. 그는 재거에 대한 비앙카의 영향력은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것보다 훨씬 부정적이었다고 지적했다.  

     

     

    이 미친 양놈들 사이에서 비앙카가 고생하네요. 마음이 아픕니다.

     

     키스는 영국 피아노 연주자 니키 홉킨스뿐만 아니라  바비 키스, 그램 파슨스 그리고 텍사스 출신의 테드 뉴먼 존스와 함께 예비 서포트 그룹을 결성했다. 그램과 그레첸 파슨스는 넬코트에 3개월 동안 입주했고, 그램과 키스는 재거가 없을 때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연주하는데 보냈다. 

     

     MICK JAGGER : 우리는 감옥처럼 보이는 키스의 역겨운 지하실에서 녹음을 했다. 나는 녹음할 수 있는 큰 방을 정말 좋아한다. 습도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견딜 수가 없었다. 노래를 부르려고 입을 여는 순간 목소리가 사라졌다. 너무 습해서 우리가 각 넘버의 끝에 다다랐을 때쯤에는 모든 기타의 음정이 맞지 않았다. 

     

    믹 테일러는 "지하실이 매우 우중충하고 습했기 때문에, 악기에선 날것의 소리가 났다."라고 말했다.

     

    우중충하고 습했다는 지하실... ^^

     

     

    이곳은 키스의 집이었고 녹음 세션은 키스 타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오후 4시경에 일어나 무수한 손님들과 어울려 몇 시간을 보내거나, 아니면 그의 방에서 몇몇사람과 함께 주사 바늘을 꽂고 시간을 보내곤 했다. 대체로 오후 10시가 훨씬 넘어서야  기타를 집어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이러다가 한번 작업 시작하면 반나절 내리 녹음하는 게 기본..- -계속해서 잼하고,,,,

    -다큐 보면... 키스가 왜 암묵적 리더랬는지 이해 가능 작업할 때 다들 키스 찾아 ㅋㅋ 리프 집어넣는 거나 기타등등..

    녹음할 때마다 예민해진 키스가 어떻게든 문제점 찾아내서 재녹음해야 했다고 빌이 불평한 것도 좋음 

    작업할 때 키스는 일주일에 다섯 시간만 잘 때도 있었다. 시간 짬짬이 내서 말론이 돌봐주는데 씀

    (그 전에 애한테 이런 환경은 진짜 안 좋은 거 아시죠? ㅠㅠ 사방에 아빠 포함 정키들이 널려있어 ㅠㅠ 말론아,,)

     

     

    믹은 거부감을 느꼈다.

    "아주 좋은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라고 그는 기억했다. "녹음을 하고 있는지, 뭘 하고 있는지, 저녁을 먹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생활이었다.  거기다 들러붙는 자들이 너무 많았다." 

     

    키스는  질서 정연한 믹이 좋아하지 않는 것, 즉 완벽한 차이를 만들기에 충분할 정도로 균형을 잃은 상황을 좋아했다.

    1년 반 동안 헤로인 중독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키스는 정점을 찍고 있었다.  

    나중에 키스는 그들의 본질적인 차이를 요약했다: 믹은 내일 무엇을 할지 아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그냥 일어나서 누가 서성거리고 있는지 보는 게 행복할 뿐이다. 믹은 락, 나는 롤이다.

     

    스톤즈의 음반 회사를 운영했던 마샬 체스는 "당시 갈등이 있었다"고 말한다.
    "믹은 망명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것은 키스의 영역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약 문제가 있었는데, 난 당시에 순진했지만, 그 영향은 알 수 있었다." 

     

    믹이 넬코트의 술잔치에 혐오감을 느끼는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는 키스가 관심을 가지는 곳에 이상하게도 소유욕이 강했고, 키스의 관심을 너무 많이 차지한 사람에게는 믹만이 알고 있는 것처럼, 적대적이었다.  이 적대심은 주로 아름다운 젊은 컨트리 가수 그램 파슨스에게 향했다. 

     

    Keith Richards: 믹과 그램은 결코 잘 지내지 못 했다. 스톤즈가 한 무리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믹은 그램이 하는 짓들을 캐내고 다녔지, 그에겐 말해줄 사람이 있어.

     

    키스와 그램은 몇 시간 동안이나 함께 있으면서 오래된 에벌리 브라더스의 노래를 연주하고 그램이 롤링 스톤즈 음반과 계약할 막연한 계획을 세우곤 했다.  많은 그램의 친구들은 그가 키스의 복제품이 되는 것을 보았다. 파멜라 데 바레스는 "그램은 늘 약에 취해 있는 상태였는데, 나는 그를 그램 리처즈라고 부르곤 했다." 라고 말했다. "그는 키스와 손을 잡고 깡충깡충 뛰면서 집 밖으로 나오곤 했다." 매니저가 회상했다. "손톱에 네일까지 칠하고는!" 

     

    "키스와 그램은 콩깍지 안에 든 콩 두 개였다. 그들은 음악을 탐험하는 가장 친한 친구였다. 짧은 순간동안 둘은 친구였고,  말썽꾸러기였다."

    믹, 키스, 그램 (믹 표정 예술이다...ㅎㅎ)

     

    그램과 키스

       71년도...그램이랑 찍힌 사진...^^

     

     

     

    시간이 흐르면서, 작곡 및 녹음 과정을 시작하는데 도움이 될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그것이 도착했을 때, 그것은 프랑스의 이국적인 남부에서 온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도 런던의 남부에서 온 것이었다. 

    71년 스톤즈는 버몬드세이에 리허설 스튜디오 겸 가구점을 운영 했었다. 당시 스톤즈의 음반사 매니저였던 트레버 처칠은 방 한구석에 테이프 더미가 숨어 있는 것을 발견 했다. "그래서, 나는 그것들을 카세트에 넣고 나서 프랑스 남부로 가져갔다." 

    처칠이 넬코트에 가져간 테이프는 데모와 불완전한 트랙이 혼합된 것으로  Bent Green Needles,  Good Time Woman 등 오늘날에도 생소한 이름들이 있었다.  이것들은 Sweet Black Angel, Tumbling Dice로 재탄생 했다. 

     

     

    5월 중순, 넬코트 지하실 테이프는 (Exile on Main St.)라는 더블 앨범으로 발매되었다.  

    키스의 기타는 스톤즈의 친숙한 60년대 후반 이후 유행하던 스트립 다운 락, 하드코어 블루스, 힐빌리 발라드 등을 지배했다.   

     

     

     

    넬코트...사람들이 워낙 몰렸고...키스 혼자만 산것도 아니고 멤버들 다 같이 산거니까...

    난잡했던 건 어쩔 수 없었다고 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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