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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믹 테일러 시기 2020. 6. 1. 05:37

     

     

    믹 테일러 기본 정보 

    60년대의 마지막 여름이 시작되면서, 롤링스톤즈가 현재 브라이언 존스의 후임자를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는 것은 런던의 락 엘리트들 사이에서 상식이었다. 브라이언의 리드 기타리스트 역할을 누가 맡을 것인지는 까다로운 문제였다. 전성기에 가졌던 위험함과 장난의 스릴을 발산한 선수는 말할 것도 없고 절반의 영특한 선수를 찾는 것도 충분히 어려울 것이다. 

    이 문제는 마샤 헌트가 명성을 얻기 전에 잠시 함께 살았던 하드코어 블루스 밴드 리더인 존 메이올에 의해 해결되었다.  그녀는 메이올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의 밴드 블루스 브레이커스에는 현재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믹 테일러라는 스무 살의 기타 거장이 등장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샤는 이 소식을 믹에게 전달했고, 믹은 즉시 테일러를 오디션에 불러들였다.  쌀쌀맞아 보이는 아기같은 얼굴에 소녀처럼 숱이 많은 머리칼을 가진 이 스무살 청년은 스톤즈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는 전혀 닮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재능은 부인할 수 없었고, 더 중요한 것은 키스와 즉각적으로 음악적 친분을 맺는 순간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Live with Me” 와 “Country Honk,” 두 곡의 렛잇블리드 트랙에 리프를 기여한 후 그는 믹으로부터 일주일에 150파운드의 임금을 받고 합류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믹 테일러가 스톤즈에 들어왔을 때 스톤즈는 이미 성공해있었기 때문에 스톤즈의 성공을 자기랑 연관시키진 않았다고 함. 대신 여기 들어와서 우쭐한 기분은 들었댔음. 그치만 영원히 여기 있지는 않았을 것 같다고 느꼈다 함.)

    5년동안, 그는 스톤즈에 엄청난 공헌을 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빌과 찰리와 같은 NCO 막사에 국한된 봉급고용인일 뿐이었다.  테일러는 작곡가로서 야망이 있었지만, 그것을 실현하려는 모든 시도는 글리머 트윈즈의  비대한 힘에 의해 무너졌다.   'It's Only Rock & Roll'을 제작하는 동안, 그는 여러 곡에 큰 기여를 했지만, 아무런 공로를 인정받지 못했다고 불평했다.  그는  스톤즈처럼 스튜디오에서 몇 주 동안 작업하는 것보다는 라이브에서 리프를 터뜨리는 것을 더 좋아하는 블루스맨이었다.  또한 블루스 밴드에 가입했다고 생각한 블루스맨에게 믹의 글램 락을 향한 시도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한계였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5년이 그에게 피해를 입혔다.  테일러는 1969년에 금연가에 채식주의자로 밴드에 들어왔다. 지금은 키스보다 얼마 뒤지지 않은 규모의 헤로인 사용자가 됐다.  73년 9월, 키스의 조수인 아름다운 그램 파슨스가 마약 과다복용으로 사망하자 그것은 테일러가 떠날 결심을 굳혀줬다.  그는 나중에 자신을 "스톤즈를 떠나 산 유일한 리드 기타리스트"라고 부르곤 했다.  

    (이때 스톤즈랑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마약을 하고 있었고 믹 테일러도 분위기 따라 마약 함. 믹 테일러는 이건 개인적인 문제였고 지금은 스톤즈를 탓하지 않는다고 말 함)

    믹은 테일러의 섬세한 싱글 스트링이 키스의 리듬 리드에 완벽한 대위점을 발휘한다고 생각했고, 그가 떠나지 않도록 열심히 설득했다.  마지막 시도는 로버트 스틱우드가 기획한 파티에서였다.  

    “그날 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돌아다니는 에릭 클랩튼을 배경으로 두고 믹은 테일러와 한참 이야기를 나눴어요.” 마샬체스가 회상했다. "하지만 소용 없었죠." 

    로이 카가 말 했다. "그는 성격 면에서 수줍음을 타서 멤버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린 적이 없었죠.
    떠난 원인은 분명히 작곡에 대한 속상한 마음이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시야를 넓히려는 테일러의 욕구도 있었어요. 그는 잭 브루스 밴드에 가입했습니다." 

    로버트 파머의 말 "테일러는 스톤즈에서 가장 재주가 많은 사람 이었습니다.  멜로디 발명을 위한 재즈맨의 재능을 가진 블루스 기타리스트인 테일러는 결코 락앤롤러도 아니었고 쇼맨도 아니었죠.  그가 그만둔 다음 날 키스는 그에게 전보를 보냈어요.  [ 지난 5년간 너와 함께 연주한 거 정말 즐거웠어. 모든 것들에 고마워. 하는 일마다 잘 풀리고 사랑을 담아.] 그의 아내 로즈의 말에 따르면, "믹은 그것을 읽고 울기 시작했어요." 

    테일러 자신은 이렇게 말했다. "정말 멋진 전보였어요. 정말이지 마음이 아팠어요. 그리고 그것이 말하는 것은 내가 그들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완전히 반영되어 있었습니다." 

     

    ㅡ믹 테일러가 스스로 말 한 스톤즈를 떠난 이유ㅡ

    테일러는 "나는 너무 오랫동안 그런 방식으로 그들과 함께 일해왔고, 다른 음악가들 없이는 더 멀리 갈 수 없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잭 브루스와의 이 기회가 왔을 때, 음, 나는 그와 함께 있고 싶었다. 나는 잭이 새로운 밴드를 결성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몇 달 전부터 알고 있었다. 우리는 최근에 함께 많이 연주했고, 정말 잘 어울렸다. 그것은 모두 순전히 음악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그 분열에는 개인적인 반감이 없었다. 언쟁도, 트집잡는것도, 티격태격 싸우는 것도 없었다."

     

    키스믹텔 떡밥 정리

     

    1. 믹 테일러가 스톤즈에 들어왔을 때 쓴 기타는 '레스 폴'이란 기타임.  이 기타는 원래 키스의 것이었음. 2년 전에  이안 스튜어트가 믹 테일러한테 키스의 '레스 폴'을 팔음.                                                                                믹 테일러는 스톤즈 활동내내 키스것이었던 기타를 썼고.. 아직도 그걸 가지고 있음 ㅎㅎ 

     

    2. 믹 테일러가 키스에 대해서 한 말

    "스톤즈의 연주방식 중 twin-guitar 라는 게 있는데 나와 키스는 리드나 리듬을 엄격하게 구분짓지 않았고 서로 떠돌아다니는 연주를 했다.  누가 무엇을 연주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것은 매우 본능적인 종류의 관계였다."

    "나는 특히 라이브 공연을 할 때, 나와 키스가 항상 교대하며 연주 했기 때문에 나를 리드 연주자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리드하면 , 내가 리듬을 하고  내가 리드하면, 그가 리듬을 하곤 했다. 때로는 한 곡 안에서조차 그랬다. 정말 두 개의 기타 밴드였다. 엄격하지 않았고 규율에 얽매이지도 않았다."

    (키스랑 연주할 때 서로 맡은 파트에 관해서) "우리는 결코 의식적으로 그것들을 해결하지 않았다. 그냥 일어난 일이었다. 그는 노래에서 대부분의 리프를 연주했고, 나는 대부분의 솔로파트를 연주했다. "

    "키스는 당시에 가장 속을 잘 털어놓지 않았다.[말을 잠시 멈춘다].. 그는 외향적인 편은 아니다. 여기에 대해 나는 내 말을 신중하게 고르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그래, 우린 잘 지냈다."

     

    3. 키스가 믹 테일러에 대해서 한 말

    "그의 연주에는 모든 것이 있었다. 선율적인 손길, 아름다운 지속력, 그리고 노래를 읽는 방법.  그는 사랑스러운 소리를 내었고, 그것은 영혼으로 충만했다. 나는 가끔 믹 테일러의 소리를 듣고 경외감을 느꼈다. 특히  “Love in Vain.” 을 슬라이드로 시도 했을 때가 그랬다. 가끔 그와 함께 잼을 하고 워밍업을 하면, 와우, 그 감정이 거기서 나온 것 같았다. 난 그 남자를 사랑했고 같이 일하는 것도 좋아했다. 그러나 그는 매우 수줍음이 많았고  거리감이 느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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